2026년 8월 30일 일요일

워시 첫 잭슨홀 연설, 금·비트코인 랠리 급제동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잭슨홀 무대에 섰다. 시장의 3분의 2 이상은 무난한 원론적 발언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매파적 발언이 나오며 국채바이백 이후 급등했던 금·은·비트코인이 하루 만에 조정을 받았다. 지난주 재무부의 시장 개입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이번 연준 의장의 한마디로 다시 한번 방향을 튼 셈이다.

파월과는 다른 스타일

8월 27~29일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연은 주최 경제정책 심포지엄, 올해 주제는 '금융혁신 - 결제와 정책에 대한 함의'였다. 120여 명의 각국 정책 담당자·경제학자가 모인 이 자리에서, 지난 5월 22일 제17대 연준 의장에 취임한 워시는 8월 28일 오전 10시 첫 키노트 연설에 나섰다. 워시는 전임 파월과 뚜렷이 다른 소통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파월을 비롯한 역대 의장들이 정교하게 다듬은 신호로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려 했다면, 워시는 명시적인 포워드가이던스(향후 정책 방향 예고) 없이 시장이 데이터를 스스로 해석하도록 놔두는 '핸즈오프' 접근을 택해왔다. 이 방식은 그동안 엇갈린 평가를 받아왔는데, 한 경제학자는 "그가 개인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발생한다고 보는지, 통화정책이 어떤 경로로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워시, "기저 흐름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연설에서도 워시는 명시적인 9월 정책 방향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뚜렷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여름 지표가 예상보다 나았지만, 기저 흐름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말해주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우리는 기저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명확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전반의 강한 힘에는 "인상 깊다"고 평가하면서도, 물가 안정이 연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장 예상을 벗어난 매파적 발언

연설 전 실시된 한 설문에서는 펀드매니저의 69%가 이번 연설이 중립적인 톤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결과는 이 예상보다 매파적이었다. 연설 직후 9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35%에서 57%로 급등했다. 국채 시장에서도 2년물 금리가 8bp, 10년물 금리가 4bp 오르며 단기물이 장기물보다 더 크게 반응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주식시장은 S&P500이 0.25~0.3%, 나스닥종합이 0.5% 안팎 밀렸고, 다우존스산업평균은 보합권에 머물렀다. 다만 세 지수 모두 그 주 전체로는 상승 마감했다.

급등했던 금·비트코인, 하루 만에 조정

이번 연설에서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따로 있다. 지난주 미국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소식에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법정화폐 대신 금·암호화폐 같은 실물자산으로 옮겨가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가 다시 불붙었다. 달러는 한 주 새 거의 1% 빠졌고, 금과 크립토는 함께 랠리했다. 그런데 워시의 매파적 발언이 나온 금요일, 이 흐름이 정확히 뒤집혔다. 존스트레이딩의 마이클 오루크 수석시장전략가는 "워시 의장이 잭슨홀에서 매파적 메시지를 던졌고, 투자자들은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 재점화로 지난주 랠리했던 금·은·비트코인이 오늘 조정받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주 거의 1% 빠졌던 달러는 이번 주, 특히 워시 발언이 나온 금요일에 반등했다.

1년 전, 파월과는 정반대 결과

흥미로운 건 이 장면이 정확히 1년 전과 대비된다는 점이다. 2025년 8월 잭슨홀에서 파월 당시 의장은 "정책이 조정될 필요가 있을 수 있다"는 짧은 한 문장으로 비둘기파적 전환을 시사했다. 그 여파로 다우존스는 860포인트(2%) 급등했고, S&P500과 나스닥도 각각 1.5%, 1.45% 올랐으며 테슬라(6%)·엔비디아·애플 같은 대형 기술주가 강세를 이끌었다. 달러는 급락하고 국채는 랠리했으며, 크립토 시장은 활황을 보였다. 그러나 워시의 연설은 1년 사이 정반대 방향으로 시장을 흔든 셈이다. 이는 같은 잭슨홀이라도 그해 연준 수장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결정은 9월 16일 FOMC 회의

일반적으로, 잭슨홀 연설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로 제한적이었다. 2000년 이후 심포지엄 다음 주 S&P500의 평균 상승률은 0.4%에 그쳤다는 블룸버그 집계도 있다. 이번에도 3대 지수 모두 그 주를 상승 마감했다는 점에서, 단기 조정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반의 방향성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재무부의 국채바이백 개입에도 장기금리가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까지 매파적 태도를 이어간다면 금·비트코인이 주도한 이번 여름의 실물자산 랠리는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FOMC 의사록 공개…9대3 표결 뒤에 숨은 매파 정서
재무부 국채 바이백에 금·비트코인 동반 급등, 클래리티법안이 분수령


📖 용어 설명
포워드가이던스 —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시장에 미리 알려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베어 플래트닝 — 채권 금리가 전반적으로 오르는(약세) 가운데, 단기물이 장기물보다 더 크게 올라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지는 현상. 통상 통화 긴축 우려가 커질 때 나타난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 — 정부의 재정 확대나 화폐가치 희석 우려가 커질 때, 금·비트코인처럼 공급이 제한된 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

📰 참고 기사:
Fed Chairman Warsh warns on inflation at Jackson Hole
Fed chair Warsh, concerned about inflation, says bank 'has more work to do'
Stock market today: Dow, S&P 500, Nasdaq end week on down note as rate-hike bets jump
Wall Street ends lower on hawkish Warsh at Jackson Hole, but rises for the week
Jackson Hole History Shows Fed Chief Rarely Shocks Stock Market
J'Hole deep dive: S&P 500, Nasdaq, Crypto rally on dovish speech (2025)

달러체제 5부작 - 4편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는 흔히 탈중앙화, 나아가 탈달러화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정작 지금 유통되는 암호화폐 중 가장 규모가 큰 스테이블코인은, 거의 전부 달러에 고정돼 있고 그 뒤에는 미국 단기국채가 쌓여 있다. 국채를 대체할 것처럼 보였던 이 자산이, 실제로는 국채 수요를 떠받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특정 자산(대부분 달러)에 '고정(페그)'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대신, 1코인이 항상 1달러에 가깝게 유지되도록 설계돼 있다. 블록체인 위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24시간 빠르게 송금·결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어떻게 그 고정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안정성이 크게 갈리는데,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다.

①법정화폐 담보형은 발행사가 코인 발행량만큼 현금·단기국채 같은 실제 자산을 준비자산으로 쌓아두는 방식이다. 테더(USDT), 서클의 USDC가 대표적이며, 지금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대다수가 이 방식이다. 이용자가 코인을 발행사에 제시하면 언제든 1달러로 되사준다는 약속(상환 보장)이 페그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②암호화폐 담보형은 달러 대신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는다. 대표적인 다이(DAI)는 이더리움 등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는 대신, 담보 가치를 코인 발행량보다 훨씬 크게(보통 150% 이상) 잡아두는 '과잉담보' 방식으로 가격 변동 위험을 흡수한다. 특정 발행사나 은행 계좌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지만, 그만큼 자본 효율은 떨어진다.

③알고리즘형은 아예 실물 담보 없이, 코드와 시장 유인만으로 가격을 1달러에 맞추려는 방식이다. 가격이 1달러를 넘으면 코인을 더 찍어내고, 밑돌면 회수해 유통량을 줄이는 식이다. 이 방식은 평상시엔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패닉에 빠지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2022년 5월,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테라(UST)가 이 약점 때문에 실제로 붕괴했다. UST는 자매 코인 루나(LUNA)와 1대1로 맞바꿀 수 있다는 구조로 페그를 유지했는데, 대규모 인출 사태로 UST 가격이 흔들리자 이를 방어하려고 루나를 대량으로 찍어내야 했고, 그 결과 루나 가격이 폭락하며 담보 가치가 함께 무너지는 악순환('죽음의 소용돌이')이 발생했다. 일주일도 안 돼 테라·루나 생태계 전체에서 약 450억 달러가 증발했고, 이 사건 이후 순수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바로 이 테라·루나 붕괴가, 다음에 살펴볼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이 왜 그렇게 엄격한 준비자산 요건을 못 박았는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GENIUS법,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채의 신뢰와 가치를 추종

2025년 7월 18일 서명된 미국의 GENIUS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반드시 준비자산을 현금·은행예금·잔존만기 93일 이내의 단기국채·국채담보 환매조건부채권 등으로만 채우도록 규정한다. 회사채 등 다른 자산은 준비자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매달 준비자산 내역을 공개하고 독립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하며, 스테이블코인 자체에 이자나 수익을 얹어주는 것도 금지된다. 이 법으로 인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사실상 '단기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기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테더(USDT)의 미국채 보유량

2026년 1분기 기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300억 달러였고, 6월에는 2,700억 달러로 늘었다. 이 중 테더(USDT)가 약 1,420억 달러, 서클(USDC)이 약 600~730억 달러를 차지한다. 특히 테더의 국채 관련 노출 규모는 약 1,13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 세계 국가별 미국 국채 보유 순위에서 독일과 비슷한 수준인 18위권에 해당하는 규모다. 민간 암호화폐 발행사 한 곳이 왠만한 국가 하나에 맞먹는 미국 국채 보유자가 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명시적으로 밝힌 전략

이건 우연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표방해온 전략이기도 하다. 행정부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국채 수요처로 명시적으로 포지셔닝해왔다. 전 세계에서 달러가 필요한 사람들이 은행 계좌 없이도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 자산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면서, 그 뒤에서는 국채 매입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최근 암호화폐 업계 전반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클래리티법안 통과를 서두르는 것도, 단순히 업계 로비에 호응하는 차원을 넘어 국채 수요 기반을 넓히려는 재정 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채 시장과 직결된 스테이블코인 리스크

이 구조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만약 특정 스테이블코인에 대규모 상환(런) 사태가 벌어지면, 발행사는 보유한 단기국채를 한꺼번에 매각해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곧바로 국채 시장의 매도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GENIUS법이 준비자산 요건과 상환 유동성 규정을 까다롭게 둔 것도, 이런 시나리오가 국채 시장 전체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수요를 늘려주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금융 안정성 리스크를 국채 시장에 발생시킬 수 있는 셈이다.

미국채 대체가 아닌 우회로

정리하면, 스테이블코인은 국채를 대신하는 자산이 아니라 국채 수요를 새로운 경로로 창출하는 도구에 가깝다. 은행 계좌를 열기 어려운 신흥국 이용자나, 자국 통화 신뢰도가 낮은 지역의 개인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사실상 달러 자산에 접근하게 되면, 그 뒤편에서는 미국 단기국채 수요가 함께 늘어난다. 3편에서 살펴본 탈달러화가 각국 중앙은행 차원에서 진행되는 흐름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그와는 정반대로 개인·기업 단위에서 달러 노출을 오히려 늘리는 경로로 볼 수 있다. 같은 시기에 국가 차원의 탈달러화와 민간 차원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지금의 통화 질서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달러체제 5부작 - 3편 탈달러화


📖 용어 설명
스테이블코인 — 가격이 달러 등 특정 자산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 발행사가 보유한 준비자산이 그 가치를 뒷받침한다.
페그(Peg) — 스테이블코인 가격을 특정 자산(주로 1달러)에 고정하는 것. 담보 자산이나 상환 보장, 알고리즘 등을 통해 유지된다.
테라-루나 사태 — 2022년 5월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테라(UST)가 페그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한 사건. 자매 코인 루나(LUNA)와의 연동 구조가 오히려 악순환을 일으켜, 일주일도 안 돼 관련 생태계에서 약 450억 달러가 증발했다.
GENIUS법 — 2025년 7월 서명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 준비자산을 현금·단기국채 등으로 한정하고, 매달 공시와 독립 감사를 의무화했다.
뱅크런(스테이블코인 런) — 다수의 보유자가 한꺼번에 상환을 요구하면서 발행사가 준비자산을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상황.

📰 참고 기사:
Stablecoins after GENIUS: Private money, public debt, and the global dollar
What are the different types of stablecoins? - The Block
UST's Collapse & The Trades That Triggered It - Chainalysis
GENIUS Act Explained: US Stablecoin Law & 2026 Rules
Stablecoins meet the statute: GENIUS, MiCA, and the Treasury bid in 2026
Text - S.1582 - GENIUS Act | Congress.gov

2026년 8월 29일 토요일

달러체제 5부작 - 3편 탈달러화

2001년 전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73%는 달러였다. 2025년 이 비중은 54%까지 떨어졌다. 2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온 이 변화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왜 달러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을까.

2022년, 신뢰가 흔들린 결정적 순간

탈달러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흐름이 뚜렷하게 빨라진 계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서방 국가들은 대응 제재로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자산을 대거 동결했고,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그 결과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고는 2022년 1월 3,830억 달러에서 2023년 말 1,300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이 사건은 러시아 한 나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에게 "달러·미국 국채 자산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하루아침에 묶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의 제재 확대, 부메랑이 되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재 대상은 2001년 120개국·단체에서 2024년 900개 이상으로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에 따르면,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면서도 외환보유고의 10% 이상을 달러 자산으로 들고 있는 비동맹국이 30~40개국에 달한다. 제재 대상이 계속 넓어지는 것 자체가, 이 나라들에게는 "언제 우리도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구조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재라는 도구를 더 자주, 더 폭넓게 쓸수록 오히려 달러 노출을 줄이려는 유인이 커지는 셈이다.

다방면으로 움직이는 중국

중국은 2022년 이후 보유하던 미국 국채를 27% 넘게 줄였다. 동시에 자국 위안화 기반 결제망(CIPS)을 확대하고, 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 등과 중앙은행 간 디지털화폐를 즉시 결제할 수 있는 엠브리지(mBridge)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중국-브라질 간 거래는 위안화·헤알화로, 러시아-중국 교역은 이미 약 90%가 루블·위안으로 결제되고 있다.

BRICS 달러 우회로 선택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을 중심으로 한 BRICS는 구매력평가(PPP) 기준 세계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다만 이들이 추진하는 건 달러를 대체할 단일 통화 창설이라기보다, 달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가깝다. 브릭스페이(BRICS Pay), 신개발은행(NDB)의 현지통화 대출, 5,000억 달러 규모의 양자 통화스와프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BRICS 국가 간 상호 교역에서 자국통화 결제 비중은 2024년 말 65%에서 최근 85%까지 늘었다. 다만 국 가별로 온도차는 있다. 인도 외교장관은 "달러를 기축통화 지위에서 밀어낼 계획은 없다"고 여러 차례 선을 그었는데, 이는 탈달러화가 BRICS 내부에서도 국가마다 동상이몽인 사안이라는 걸 보여준다. 미국은 이런 흐름에 강하게 반발하며, 지난해 9월 탈달러화를 추진하는 BRICS 국가에 최대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안은 유로도 위안도 아닌 금

탈달러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유로나 위안이 달러 자리를 곧바로 대체하는 것도 아니다. 유로는 자체적인 구조적 한계가 있고, 위안은 자본이동 통제 때문에 완전한 태환이 어렵다. 그 결과 지금까지 가장 뚜렷한 수혜를 본 자산은 금이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2022년 이후 매년 1,000톤 안팎의 금을 사들이고 있고(2025년 863톤, 2026년 755톤 예상), 그 결과 앞선 1편에서 다뤘듯 중앙은행 준비자산 중 금 비중(27%)이 미국 국채 비중(22%)을 앞지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금은 특정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제재로 동결될 위험도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준비자산'이라는 위상을 되찾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달러가 압도적이라는 반론도

이 흐름을 "달러 패권의 종말"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달러는 여전히 전 세계 준비자산의 42%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이며, 국제 무역·금융거래 결제에서도 대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탈달러화는 급격한 붕괴라기보다, 20여 년에 걸쳐 서서히 비중이 줄어드는 완만한 구조조정에 가깝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다음 편에서 다룰 질문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 스스로도 이런 탈달러화 흐름을 마냥 손 놓고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새로운 카드를 하나 꺼내들었다. 바로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언뜻 보면 암호화폐는 탈중앙화·탈달러화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대다수는 달러에 고정돼 있고, 그 준비자산 대부분이 미국 단기국채로 채워진다. 다음 편에서는 이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는 국채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국채 수요처로 자리 잡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짚어본다.

(※ 본 포스팅은 특정 국가나 정치 세력을 비판하거나 지지할 목적이 아니며,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전달 목적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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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체제 5부작 - 2편 비트코인과의 상관관계


📖 용어 설명
SWIFT — 전 세계 은행들이 국제 송금·결제 지시를 주고받는 통신망. 특정 국가의 은행을 이 망에서 배제하면 사실상 국제 금융거래가 크게 제한된다.
OFAC(해외자산통제국) — 미국 재무부 산하 기구로, 특정 국가·단체·개인에 대한 경제 제재를 관리·집행한다.
mBridge — 중국·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 등이 참여해 각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즉시 국경 간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 참고 기사:
De-Dollarization Trend: Global Currency Shift Analysis
BRICS De-Dollarization in 2026: Turning Point for Global Dollar Use
BRICS Accelerates De-Dollarization as Russia and China Settle 90% of Trade in Local Currencies
BRICS 2026 Summit Prep: De-Dollarization Strategies

2026년 8월 28일 금요일

달러체제 5부작 - 2편 비트코인과의 상관관계

비트코인은 흔히 '디지털 골드'라 불린다. 공급이 2,100만 개로 고정돼 있다는 점에서 금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비트코인이 금처럼 움직인 기간보다 나스닥 기술주처럼 움직인 기간이 훨씬 길다. 2015년부터 2026년까지, 비트코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계속 뒤바뀌어왔는지를 추적했다.

독자적 소규모 투기 자산

비트코인 초기(2015~2020년), 아직 기관 자금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시기에는 비트코인과 금의 상관관계가 평균 0.1 안팎에 머물렀다. 통계적으로 거의 무관하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 시기 비트코인은 전통 금융시장과 뚜렷한 연결고리 없이, 독자적인 소규모 투기 자산으로 거래됐다.

코로나19 양적완화로 위험자산 편입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각국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비트코인은 처음으로 전통 금융시장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유동성이 넘치는 국면에서 나스닥 등 위험자산과 함께 급등했고, 2022년 5월에는 비트코인과 나스닥100의 상관계수가 0.72까지 올랐다. 같은 해 7월에는 0.894라는, 사실상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연준의 금리인상, 인플레이션, 유동성 축소라는 같은 매크로 변수에 두 자산이 동시에 반응한 결과였다. 이 시기 비트코인은 '디지털 골드'라기보다 '레버리지가 낀 나스닥'에 가까웠다.

SEC의 크립토 규제

2023년 2분기, 비트코인과 S&P500의 상관관계가 0.09까지 뚝 떨어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바이낸스·코인베이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크립토 업계에만 해당하는 악재가 따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변수와 무관하게 크립토만의 사정으로 움직이는 구간이 잠깐 나타난 셈이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

2024년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기관 자금이 전통적인 주식 계좌를 통해 비트코인에 접근할 수 있게 되자, 2024년 말~2025년 초 비트코인과 나스닥100의 30일 상관관계는 0.7까지 올라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ETF라는 통로 자체가 비트코인을 '또 하나의 포트폴리오 위험자산'으로 재편입시킨 셈이다.

유동성에 민감한 고위험 기술주

2026년 1월, 비트코인과 나스닥100의 30일 상관관계는 0.80으로 거의 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문제는 같은 시기 금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금은 8.6% 오른 반면 비트코인은 6.6% 떨어지는 등, 위기 국면에서 정반대로 움직이는 사례가 반복됐다. 일부 매체는 이를 두고 "비트코인의 디지털 골드 서사가 무너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유동성에 민감한 고위험 기술주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비트코인 정책

흥미로운 건, 시장에서 비트코인의 '디지털 골드' 지위가 흔들리던 바로 그 시기에, 미국 정부는 정책적으로는 정반대 방향을 걷고 있었다는 점이다. 2025년 3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14233호로 '전략비축 비트코인(Strategic Bitcoin Reserve)'을 공식 설립했다. G7 국가 중 비트코인을 국가 준비자산으로 공식 지정한 첫 사례다. 이 행정명령의 배경 설명 문구에는 "비트코인은 공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돼 있어 흔히 '디지털 골드'라 불린다"는 문장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시장 데이터가 '디지털 골드 서사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동안, 정책 문서는 여전히 그 서사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전략비축분은 세금으로 사들인 게 아니라, 실크로드 마약거래 사이트나 비트파이넥스 해킹 사건처럼 범죄·민사 몰수로 압수해온 비트코인으로 채워졌다. 전략비축분만 약 19만8,000 BTC, 다른 연방기관 보유분까지 합치면 미국 정부 전체 보유량은 2026년 초 기준 약 32만8,000 BTC로 추산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 단위 비트코인 보유량이다. 행정명령의 핵심 조항은 단 하나, "매도 금지"다. 백악관은 팩트시트에서 "과거 성급하게 매각한 비트코인 때문에 미국 납세자가 이미 170억 달러 넘는 손해를 봤다"고 밝히며 이 조항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2024년 중반 압수한 비트코인을 매각했는데, 그 직후 가격이 급등하면서 "최근 정부 매각 중 가장 비싼 실수"로 꼽히는 반면교사 사례가 됐다.

다만 '추가 매입'까지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행정명령은 재무부·상무부에 예산 중립적인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더 사들일 전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이를 위한 예산은 배정되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2025년 8월 "추가로 사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재무부가 5년간 100만 BTC를 매입하도록 하는 'BITCOIN법'도 아직 상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때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자문위원회 사무국장이 "미국이 보유한 금을 일부 팔아 예산 중립적으로 비트코인을 더 사들이자"는 아이디어를 낸 적도 있는데, 이는 금과 비트코인이 같은 '준비자산 예산' 안에서 경쟁 관계로 논의됐다는 걸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연방 차원을 넘어 뉴햄프셔주는 2025년 5월 미국 주 단위 최초로 자체 비트코인 준비자산법을 통과시켰고, 10여 개 주가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은 안전자산, 비트코인은 위험자산

2026년 초중반, 비트코인과 금의 1년 상관관계는 -0.17까지, 90일 기준으로는 -0.88까지 떨어졌다. 2022년 크립토 겨울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은 순수한 안전자산으로, 비트코인은 유동성과 레버리지에 좌우되는 위험자산으로 역할이 완전히 갈라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같은 시기 비트코인과 달러인덱스(DXY)의 상관관계는 오히려 플러스로 전환됐는데, 이는 2020~2024년의 전형적인 역상관(-0.4~-0.8) 패턴과는 다른 이례적인 흐름이었다.

2026년 8월 국채 바이백

그런데 이번 국채 바이백 사태에서는 다시 금과 비트코인이 함께 급등했다. 재무부 발표 당일 금은 3%, 비트코인은 며칠 새 6만5,000달러대에서 8만 달러 문턱까지 뛰었다. 몇 달간 정반대로 움직이던 두 자산이 다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이게 '디지털 골드 서사'의 부활 신호인지, 아니면 클래리티법안 통과 기대감·숏스퀴즈 같은 일시적 요인이 우연히 겹친 결과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정체성이 없는 비트코인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면, 비트코인은 한 번도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한 적이 없다. 유동성이 풍부할 땐 위험자산으로, 크립토 업계만의 악재가 터지면 독자 노선으로, 위기가 닥치면 대체로 안전자산인 금과는 반대로 움직여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시장이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에도 정책 차원에서는 비트코인을 이미 '전략자산'으로 못박아버렸다는 점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매일의 가격 움직임으로 비트코인의 정체성을 계속 재협상하는 동안, 정부는 법적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셈이다. 이 두 층위(시장의 실시간 평가 vs 정책의 고정된 분류)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데 계속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상관관계는 시기마다 계속 달라지는 값이지, 비트코인에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이런 '달러 신뢰'의 흔들림이 개별 투자자 심리를 넘어,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달러체제 5부작 - 1편 달러 50년사


📖 용어 설명
상관계수 — 두 자산이 얼마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1(완전 반대)에서 +1(완전 동일) 사이 숫자로 나타낸 지표. 0에 가까울수록 서로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달러인덱스(DXY) —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수. 통상 위험자산과는 반대로, 안전자산과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전략비축자산 — 국가안보·경제안정을 위해 정부가 별도로 비축해두는 핵심 자원. 미국은 금·석유(전략비축유)·의약품 등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해왔고, 2025년 3월 비트코인이 이 목록에 추가됐다.

📰 참고 기사:
Why Bitcoin's "Digital Gold" Narrative Is Crumbling as Gold Soars
Bitcoin Gold Correlation Coefficient 2026: Full Breakdown
Bitcoin Correlation Calculator: BTC vs Stocks, Gold, Bonds
Exploring Crypto Market Correlations: Bitcoin, Gold & the Nasdaq 100
Bitcoin Is Trading Like Equities — Not Like Digital Gold
Fact Sheet: President Trump Establishes the Strategic Bitcoin Reserve
US Strategic Bitcoin Reserve: Endorsed, Not Bought
Trump's No-Sell Bitcoin Reserve: What EO 14233 Actually Does

2026년 8월 27일 목요일

달러체제 5부작 - 1편 달러 50년사

"금리가 오르면 금값은 떨어진다." 투자 상식처럼 통하는 이 공식이 실제로는 50년 넘는 데이터로 검증하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금값과 금리의 상관관계는 약 28%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금값을 실제로 움직여온 건 무엇이었을까.

1971년 닉슨쇼크,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출범한 전후 국제통화체제는, 미국 달러를 온스당 35달러로 금과 고정 태환하고 나머지 통화들은 다시 달러에 고정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 미국의 대외원조·군사비 지출·해외투자로 달러가 과잉 공급되면서, 미국이 보유한 금(전후 2만 톤 이상)으로는 시중에 풀린 달러를 다 받쳐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 태환을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닉슨쇼크'다. 이후 1973년까지 주요국 통화가 잇따라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실상 종료됐고, 금값은 처음으로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 금리가 올라도 금값이 폭등한 이유

닉슨쇼크 이후 10년간 금값은 온스당 35달러에서 512달러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명목금리도 함께 오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금리와 금값이 반비례한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구간이다. 핵심은 명목금리가 아니라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값)였다. 1970년대는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물가상승률이 명목금리보다 더 빠르게 뛰었고, 그 결과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구간에 머물렀다. 국채에 돈을 넣어봐야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이 오히려 매력적인 자산이 된 것이다.

1980~1990년대 — 볼커의 고금리가 만든 금 약세장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는 두 자릿수까지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0% 안팎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뒀다. 이번엔 물가상승률이 금리보다 훨씬 빠르게 꺾이면서, 실질금리가 뚜렷한 플러스로 돌아섰다. 국채에 넣으면 물가상승분을 제하고도 몇 %씩 실질 수익이 남는 상황에서, 이자 없는 금이 이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금은 지지부진한 약세장을 이어갔다.

2008년 금융위기 — 제로금리가 다시 부른 금 강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대규모 양적완화(QE)에 나서면서, 실질금리는 다시 마이너스 구간으로 진입했다. 금값은 2011년 온스당 1,9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2013년 연준이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를 시사하며 실질금리가 반등하자 금값도 조정을 받았는데, 이 역시 "실질금리가 진짜 변수"라는 패턴과 일치한다.

2022년 — 금리도 이겨낸 금, 새로운 생태

2022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80년대 볼커 시절 이후 가장 가파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교과서대로라면 이 시기 금값은 볼커 시대처럼 무너져야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금이 비교적 잘 버텼고, 이후 몇 년간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했다. 여기엔 실질금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변수가 있었다. 같은 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자산을 대거 동결했는데, 이 사건이 전 세계 중앙은행들에게 "달러·미국 국채 자산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묶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 결과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이 2022년 이후 매년 1,000톤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6년 지금 — 중앙은행 준비자산이 국채에서 금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준비자산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미국 국채 비중(22%)을 앞질렀다. 199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년 전만 해도 금은 20%, 국채는 25%였다. 국채와 경쟁하는 회사채 발행 러시,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 우려까지 겹치며 미 장기국채 금리는 2026년 들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는데, 이번엔 금리가 올랐는데도 금값이 오히려 함께 뛰는 조합이 나타났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헤지하려는 수요가, 실질금리라는 전통적인 변수를 밀어내고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달러 50년사 실질금리 외 변수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금값을 움직인 힘은 매번 달랐다. 1970년대는 마이너스 실질금리, 1980~1990년대는 플러스 실질금리, 2008년 이후는 다시 마이너스 실질금리, 그리고 2022년 이후는 실질금리로 설명이 안 되는 지정학적 신뢰 붕괴였다. 결국 "금리가 오르면 금이 떨어진다"는 단순한 반비례 공식보다, "지금 돈을 가만히 들고 있는 것과 국채에 넣어두는 것, 둘 중 뭐가 더 안전하고 유리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시대마다 계속 바뀌어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다음 편에서는 이 오래된 질문에 2009년 뒤늦게 뛰어든 새로운 도전자, 비트코인이 금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살펴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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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 국채 바이백에 금·비트코인 동반 급등…클래리티법안까지 겹쳤다


📖 용어 설명
실질금리 —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값. 예금·국채 이자가 물가상승분을 제하고도 실제로 얼마나 이득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의 상대적 매력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브레튼우즈 체제 — 1944년 출범한 전후 국제통화체제로, 미국 달러를 금에 고정하고 나머지 통화를 다시 달러에 고정하는 구조였다. 1971년 닉슨쇼크로 사실상 종료됐다.
테이퍼링(Tapering) — 중앙은행이 채권 매입 등을 통한 양적완화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정책.

📰 참고 기사:
The Smithsonian Agreement | Federal Reserve History
Nixon and the End of the Bretton Woods System, 1971–1973
Gold and Interest Rates: 50-Year Relationship Explained
Gold Price History — 50-Year Chart & Key Milestones
Gold Overtakes US Treasuries in Central Bank Reserves for First Time Since 1996

2026년 8월 22일 토요일

재무부 국채 바이백에 금·비트코인 동반 급등, 클래리티법안이 분수령

미 재무부가 국채 매입(바이백)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지 며칠 만에, 금과 비트코인이 나란히 급등했다. 비트코인은 8만 달러 문턱까지 치솟으며 3년 만에 가장 강한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정작 재무부가 잡으려던 국채 금리는 하루 만에 상당 부분 되돌아갔다. 개입은 절반만 통했는데, 자산시장은 왜 이렇게까지 뜨겁게 반응했을까.

30년물 금리 5.33%→5.18%, 하루 만에 되돌림

지난 6월부터 미국 장기 국채는 매도세에 시달려왔다. 재정적자 우려, 목표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 국채와 경쟁하는 회사채 발행 러시가 겹치며 30년물 금리는 8월 19일 발표 직전 5.33%까지 치솟았다. 2007년 6월 이후 최고치였다. 이에 재무부는 8월 19일, 10~30년물 국채 매입 규모를 건당 20억 달러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9월 9일부터 실제 집행되며, 다음 정례 국채발행계획 발표일인 11월 4일까지 이어진다.

발표 직후 30년물 금리는 10bp 넘게 떨어지며 5.18~5.2%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다음 날인 8월 20일, 금리는 다시 7bp 넘게 반등하며 5.25~5.27%까지 올라섰다.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직전 최고치 5.33%보다는 낮은 수준), 하루 만에 하락분의 상당 부분을 반납한 셈이다. JP모건의 마이아 크룩 연구원은 이번 개입이 채권시장의 구조적인 문제 자체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고 평가했고, 다른 분석가들도 재무부의 매입 규모가 약 30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 시장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조치의 의미는 실질적인 물량보다, 재무부가 필요하면 언제든 이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상징성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 3%·비트코인 7만달러,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

흥미로운 건 정작 국채 금리보다 금과 비트코인이 훨씬 뜨겁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재무부 발표 당일(8월 19일) 금은 약 3% 뛰었고, 비트코인은 6만5,000달러대에서 6만9,000~7만 달러 구간까지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이를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화폐가치 희석에 대비하는 매수세)라 부른다. 정부가 빚으로 빚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모습 자체가, 재정 건전성과 달러 구매력에 대한 우려를 자극했다는 해석이다.

이 흐름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준비자산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미국 국채 비중(22%)을 앞질렀다. 199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년 전만 해도 금은 20%, 국채는 25%였다.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달러 자산 대안을 찾아온 움직임에, 최근의 금값 급등(2025년 한 해에만 약 60% 상승)까지 더해진 결과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라 평소엔 금리가 오르면 매력이 떨어지는데, 이번엔 금리와 금값이 같이 뛰는 이례적인 조합이 나타났다. 공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된 비트코인 역시 같은 맥락에서 '희소자산'으로 묶여 함께 움직였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9월 15일 클래리티법안 표결이라는 변수

비트코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인 8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클래리티법안' 통과를 강하게 촉구하면서 비트코인은 한 번 더 급등해 7만1,570~7만2,658달러까지 올라섰다(6월 2일 이후 최고치). 이 과정에서 16만 명 넘는 트레이더의 포지션이 청산됐고, 청산 규모는 13억~27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번에도 하락에 베팅했던 공매도 포지션들이 대거 손절 매수에 나서며 상승폭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클래리티법안은 암호화폐를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중 어느 기관이 규제할지를 정하는 법안으로, 지난해 7월 하원을 294대134로 통과했다. 다만 상원에서는 윤리 조항과 은행권의 반대에 막혀 표결이 계속 미뤄져 왔고, 존 슌 상원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저지 절차 표결을 9월 15일로 예고해둔 상태다. 공화당이 53석을 가진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넘으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에서 6~7표를 추가로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7만9,463달러 찍고 8만달러 벽에 저지

상승세는 주말까지 이어졌다. 8월 21일, 비트코인은 7만9,463.71달러까지 치솟으며 3년 만에 가장 강한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주일 새 상승폭은 23%에 달했고, 6~7월만 해도 6만5,000달러 아래에 머물던 가격이 불과 몇 주 만에 8만 달러 문턱까지 올라온 셈이다. 다만 이 고점에서 3%가량 밀려나며 7만7,000~7만8,000달러대로 되돌아왔다. 코인글래스 데이터에 따르면 8만 달러 지점에는 대형 보유자(고래)의 매도 물량이 벽처럼 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런 대량 매도 물량은 흔히 라운드 넘버(꽉 찬 숫자) 부근에서 시세 상승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놓이는 경우가 많다.

월가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제프리 켄드릭 디지털자산 리서치 총괄은 올해 안에 10만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기존 전망조차 너무 낮게 잡았다고 평가하며, 이번 조정장이 역대 가장 얕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짚었다. 반면 기술적으로는 8만 달러 부근에 50주·100주 이동평균선이 겹쳐 있어 이 구간을 뚫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 그리고 예측시장 폴리마켓에서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50%를 다시 넘어섰다는 점도 상승세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변수로 거론된다.

"4만4,000~4만8,000달러 급락" 경고하는 신중론

이런 급등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예측시장 칼시(Kalshi)는 이 법안이 올해 안에 실제로 법으로 통과될 확률을 20% 안팎으로 낮게 보고 있는데, 이 수치 자체가 롤러코스터를 탄 결과다. 2월 19일 82%까지 올랐던 낙관론은, 5월 14일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15대9, 민주당은 단 2명만 찬성)한 뒤에도 "위원회 통과와 본회의 필리버스터 저지(60표)는 전혀 다른 산수"라는 인식이 퍼지며 서서히 꺾였다. 그러다 8월 6일, 존 슌 상원 원내대표가 휴회 전 절차 표결(cloture) 신청 자체를 하지 않으면서 "그만큼 60표를 모을 정치적 동력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20%까지 급락했다(이후 슌 원내대표가 9월 15일 표결을 예고하면서 소폭 반등했지만, 9월 통과 자체의 확률은 여전히 40%를 밑도는 수준이다).

표 계산이 빡빡한 것 외에 협상 쟁점도 걸림돌이다. 연방 공직자가 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후원하는 것을 제한하는 윤리 조항을 두고 협상이 막혀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암호화폐로 상당한 수익을 낸 전력이 있어 이 조항 자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됐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을 이탈시킬 수 있다는 은행권의 반대, 탈중앙화 금융(DeFi) 규제를 둘러싼 미합의도 남아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지금의 급등이 실제 수요보다 유동성 완화에 기댄 반응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향후 4만4,000~4만8,000달러까지 밀리는 '마지막 급락'을 거친 뒤에야 진짜 상승장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최근 몇 달간 비트코인이 6만~7만 달러 구간에서 300일 넘게 횡보해왔다는 점, 그리고 일부 기업들이 보유 비트코인을 매각하며 평가손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신중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1942~1951년 금리통제와의 결정적 차이

재무부와 연준이 힘을 합쳐 금리 자체를 강제로 눌러버리는 방법도 이론적으로는 있다. 실제로 1942년부터 1951년까지, 연준은 전쟁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장기 금리를 2.5%로 고정하는 정책을 폈던 전례가 있다. 다만 지금은 그때와 조건이 다르다. 당시엔 금 개인 보유 자체가 법으로 금지(1933~1974년)돼 있어 대체 자산이 마땅치 않았지만, 지금은 금과 비트코인이 24시간 자유롭게 거래된다. 자본 이동도 완전히 개방돼 있어, 금리를 강제로 누르면 자금이 해외나 대체자산으로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유통 국채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어, 금리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면 이들이 환차손을 우려해 오히려 국채를 대거 팔아치우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잭슨홀·바이백 집행·FOMC, 9월에 몰린 일정

앞으로 몇 주간 자산시장의 방향을 좌우할 만한 일정이 촘촘히 잡혀 있다. 8월 28일 잭슨홀 심포지엄에서는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취임 후 첫 연설에 나선다. 9월 9일에는 확대된 국채 바이백이 실제로 처음 집행되며, 발표만으로 그쳤던 효과가 실제 매입으로 이어질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9월 15일 클래리티법안 절차 표결은 통과 여부에 따라 비트코인과 주식시장에, 무산될 경우 금 쪽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신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9월 16일에는 FOMC 회의가 예정돼 있고, 11월 4일은 이번에 확대된 바이백 조치의 재검토 시한이자 재무부가 다음 방침을 밝히는 시점이다. 결국 지금의 급등이 화폐가치 희석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를 반영한 흐름인지, 아니면 몇 가지 호재가 겹치며 만들어진 일시적인 유동성 랠리인지는 이 일정들을 하나씩 통과하면서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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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MC 의사록 공개…9대3 표결 뒤에 숨은 매파 정서, 3명보다 넓었다


📖 용어 설명
국채 바이백(Buyback) — 정부가 이미 발행한 국채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는 정책. 해당 만기 국채 수요가 늘어난 것처럼 받아들여져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 — 정부의 재정 확대나 화폐가치 희석 우려가 커질 때, 금·비트코인처럼 공급이 제한된 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
클래리티법안(CLARITY Act) — 암호화폐를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중 어디서 규제할지 정하는 미국 법안. 하원은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표결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숏스퀴즈 —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투자자들이 예상과 달리 가격이 오르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되사들이면서, 그 매수 자체가 가격을 추가로 밀어올리는 현상.

📰 참고 기사:
What the Treasury's Buyback Surprise Says About the Bond Market - CFR
Treasury bond buybacks ease long-term yields, but analysts see limited relief
Treasury Announces Increased Sizes of Nominal Long-End Liquidity Support Buybacks
Why gold and Bitcoin surged together: What Treasury buybacks teach investors
Gold Overtakes US Treasuries in Central Bank Reserves for First Time Sinc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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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9일 수요일

FOMC 의사록 공개…9대3 표결 뒤에 숨은 매파 정서

연방준비제도(Fed)가 8월 19일(현지시간) 7월 28~29일 FOMC 회의 의사록을 공개했다. 지난달 연준은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는데, 이번 의사록을 보면 그 결정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표가 갈린 회의였다는 게 드러난다.

매파 정서, 3명보다 훨씬 넓게 퍼져 있었다

7월 회의에서 베스 해맥(클리블랜드 연은), 닐 카시카리(미니애폴리스 연은), 로리 로건(댈러스 연은) 세 지역 연은 총재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며 동결에 반대했다. 이사회(Board of Governors) 소속 위원 중에는 반대표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의사록을 보면, 매파적 정서가 이 세 명의 반대표보다 훨씬 넓게 퍼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의사록에는 "인플레이션이 낮아지지 않는다면 긴축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는 참석자들의 발언이 그대로 인용됐고, 일부 위원은 현재의 금융여건이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되돌리기에 충분히 타이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기록됐다. 즉 표결에서는 9대3으로 동결이 확정됐지만,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그 표차보다 훨씬 팽팽했다는 뜻이다.

워시 의장의 색다른 스타일

이번 의사록에서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케빈 워시 의장이 직접 제기한 안건이다. 그는 연 8회인 FOMC 정례회의를 6회로 줄이고, 약 두 달 간격으로 재편하자는 논의를 위원회에 제안했다. 회의 간격을 늘리면 회의 사이에 더 많은 정보가 쌓이고, 정책 담당자와 스태프들이 전략적인 통화정책 이슈를 검토할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위원회는 의견을 나눴지만 결론을 내지는 않았고, 워시 의장은 올해 남은 회의는 기존 일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워시 의장은 향후 정책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포워드 가이던스 자체를 꺼리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데, 7월 회의 성명서도 짧고 별다른 힌트가 없었다. 이 때문에 회의 직후 미 국채 시장에서는 단기물 금리는 낮아지고 장기물 금리는 오르는 스티프닝(수익률곡선 가팔라짐)이 나타났는데, 향후 정책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며 기간 프리미엄이 확대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워시 의장은 최근 금융여건이 스스로 긴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비교적 편안한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이는 기준금리 자체가 모든 긴축 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기준금리 외에 대차대조표 정책까지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2월 인상 전망까지 나왔다

의사록 공개 이후 시장의 9월 동결 확률은 약 65%로 올라섰다. 몇 주 전만 해도 인상과 동결 가능성이 반반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꽤 달라진 셈이다. 다만 JP모건 글로벌 리서치는 최근 전망을 수정하며 첫 0.25%포인트 인상 시점을 12월로 제시하기도 했다. 즉 당장 9월엔 동결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연내 인상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의사록 발표 전후, 자산시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시장이 의사록 발표 당일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표 이틀 전인 8월 17일, S&P500은 직전 주 기록한 사상 최고치(7,800선 근접)에서 밀려나며 0.5%가량 내렸다. 미국-이란 지정학 리스크로 유가가 오르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부각됐고, 30년물 국채금리는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으며, 7월 소매판매도 예상을 밑돌았다. 여러 매파적 재료가 한꺼번에 겹치며 투자자들이 의사록 발표를 앞두고 미리 몸을 사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같은 기간 비트코인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6만2,800달러대에서 6만4,000달러를 넘어서며 상승했는데, 이 시점 시장 심리 지표(공포탐욕지수)는 여전히 '공포' 구간에 머물러 있어, 이 반등이 확신에 찬 자금 유입이라기보다 의사록을 앞둔 단기 포지셔닝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상 위험자산으로 함께 묶여 움직이는 주식과 비트코인이 같은 매크로 이벤트를 앞두고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정작 8월 19일 의사록이 공개된 그 시각, 시장을 더 크게 흔든 건 의사록 자체가 아니라 미 재무부의 별도 발표였다.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예상보다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장기 금리가 낮아지고 달러는 약세를 보였는데, 이 소식에 비트코인은 몇 시간 만에 6만4,000달러대에서 7만 달러 근처까지 급등했다. 같은 시간 미 국채 시장은 반대로 출렁였다. 세계적으로 국채가 대거 매도되며 수익률이 치솟았고, 이 여파로 주식시장도 하락 압력을 받았다. 결국 이번 한 주는 FOMC 의사록 하나만이 아니라, 지정학 리스크·재무부 국채 정책·연준 통화정책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동시에 자산시장을 흔든 한 주였던 셈이다.

위험자산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데, 왜 폭등했나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위험자산은 보통 불확실성을 싫어하는데, 매파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사록이 나온 날 비트코인은 왜 오히려 급등했을까. 시장이 진짜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 그 자체라기보다, 그 불확실성이 해소됐을 때 나쁜 쪽으로 풀리는 것이다. 이번엔 의사록과 별개로 재무부의 국채 매입 확대라는 뜻밖의 유동성 신호가 겹쳤는데, 주식과 비트코인이 이 신호를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다.

주식 입장에서는 이 신호가 그날 밤 이미 벌어진 전 세계 국채 매도(수익률 급등)라는 악재와 뒤섞이며 애매하게 상쇄됐다. 반면 공급이 2,100만 개로 고정된 비트코인에게는, "유동성이 늘고 달러가 약해진다"는 신호가 오히려 희소자산으로서의 매력을 키우는 쪽으로 단순하게 해석됐다. 여기에 매파적 의사록을 예상하고 미리 하락 쪽에 베팅해뒀던 공매도 포지션들이, 예상과 반대로 가격이 뛰자 손실을 줄이려 서둘러 되사들이는 과정(숏스퀴즈)이 겹치며 상승폭이 한층 커졌다. 비트코인 선물시장이 주식보다 레버리지 비중이 높고 24시간 열려 있다는 점도, 같은 뉴스에도 유독 크게 흔들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다만 이 반등이 그대로 추세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비트코인은 이번 급등으로 7만 달러 문턱까지 올라섰지만, 여전히 200일 이동평균선(7만1,600~7만1,900달러대)보다는 아래에 머물러 있어, 큰 그림에서는 상승 추세를 완전히 회복했다기보다 조정 국면 안에서의 반등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재무부의 국채 매입 확대 규모 자체가 전체 장기 국채 시장에 비하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고, FOMC 의사록은 여전히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향후 국채 금리가 다시 오르면 이번 반등이 되돌려질 수 있다는 신중론도 함께 나온다.

다음 관전 포인트 — 잭슨홀과 남은 지표들

시장의 시선은 이제 이달 말 열리는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으로 옮겨가고 있다. 워시 의장은 여기서 취임 후 첫 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9월 FOMC 전까지 인플레이션·고용 지표가 추가로 발표되는 만큼, 단기적인 정책 방향은 그 사이 나오는 데이터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의사록 자체가 3주 전 회의를 다룬 후행 지표라, 그 사이 나온 인플레이션·고용 데이터가 워낙 많아 시장이 이번 의사록을 크게 새겨듣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관건은 매파적 소수 의견이 다음 회의에서 얼마나 더 늘어나는지, 그리고 워시 의장이 잭슨홀에서 처음으로 내놓을 메시지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용어 설명
FOMC 의사록 —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약 3주 뒤 공개되는 상세 회의록. 표결 결과만으로는 안 보이는 위원들 간의 논의 내용과 온도차를 확인할 수 있어 시장이 주의 깊게 살핀다.
포워드 가이던스 —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시장에 미리 알려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시장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정책 유연성을 제약한다는 반론도 있다.
수익률곡선 스티프닝 —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차이가 벌어지는 현상. 장기 금리가 더 오르거나 단기 금리가 더 내리면 나타나며, 향후 정책 불확실성이나 기간 프리미엄 확대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국채 바이백(Buyback) — 정부가 이미 발행한 국채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는 정책. 매입 규모를 늘리면 해당 만기 국채 수요가 늘어난 것처럼 시장이 받아들여 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숏스퀴즈 —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투자자들이 예상과 달리 가격이 오르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되사들이면서, 그 매수 자체가 가격을 추가로 밀어올리는 현상.

📰 참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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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FOMC Minutes due Wednesday 19th Augus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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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잭슨홀 무대에 섰다. 시장의 3분의 2 이상은 무난한 원론적 발언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매파적 발언이 나오며 국채바이백 이후 급등했던 금·은·비트코인이 하루 만에 조정을 받았다. 지난주 재무부의 시장 개입으로...